몰아보기 좋은 영화 시리즈 영화 베테랑 1, 2편 리뷰
우리는 영화를 볼 때 종종 너무 쉽게 판단하곤 합니다. “저 사람은 착하네”, “쟤는 나쁜 놈이야”라고 단정 지어버리는 거죠.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영화 속 인물들도, 우리가 사는 현실의 사람들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겉으로는 선해 보이고 정의로운 말들을 하지만, 그 속에는 복잡한 감정과 이기심이 얽혀 있는 경우가 많죠. 누군가는 선을 내세우지만 그 안에는 계산이 숨어 있고, 또 누군가는 거칠어 보여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에요. 결국 사람이라는 존재는 한 가지 색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걸, 영화는 자주 보여줍니다.
겉으로는 착해 보여도 속은 잘 알 수 없는 인물들, 혹은 나쁘게 보이지만 사연을 알고 보면 이해가 가는 인물들 말이죠. 이런 캐릭터들을 통해 과연 우리가 평소에 생각해온 ‘착함’과 ‘악함’이라는 기준이 정말 맞는 걸까,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 영화 속 인물들 중에서도 선한지 악한지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을 함께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노덕 감독의 <특종: 량첸살인기>에서 조정석이 연기한 허무혁 기자는 한때 잘나갔지만 지금은 기사 하나 쓰기 힘든, 생계형 기자입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단독으로 인터뷰했다는 ‘특종’을 만들어내며 일약 스타기자로 떠오르게 되죠. 하지만 그 시작은 허위였고, 이후에도 그는 더 큰 주목과 인정을 위해 거짓과 조작을 계속해서 쌓아갑니다. 허무혁은 악의적인 범죄를 직접 저지르진 않지만, 진실보다 명예와 욕망을 선택함으로써 수많은 사람을 오도합니다. 그의 표정은 친근하고 유쾌하지만, 그 안에는 사회적 욕망과 불안정한 자존감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죠. 관객은 그를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이해하게 됩니다. 모두가 빠져드는 ‘자극적인 뉴스’ 속에서 과연 우리는 진실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까요? 허무혁은 단순히 이기적인 인물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만든 괴물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기생충> 속 김기택은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하려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그는 자식들을 이끌고, 박 사장의 집에 조금씩 스며들며 '생존'을 위한 침입을 시도합니다. 그의 행동은 명백히 불법이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를 악인으로 쉽게 단정하지 않습니다. 김기택은 가난 속에서도 최대한 점잖게 살려고 애쓰지만, 반복되는 차별과 ‘냄새’로 상징되는 경멸은 결국 그의 인내심을 무너뜨립니다. 마지막 폭력 장면은 충격적이지만, 그 내면에는 오랜 시간 쌓인 자존심의 파편과 인간적인 분노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는 악인도, 선인도 아닙니다. 단지 ‘버텨야 했던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단죄하기보다, 어쩌면 이해하고 싶어지죠.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 속 황정민이 연기한 형사 최철기는 단번에 선하거나 악하다고 판단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는 강력사건 해결을 위해선 불법도 서슴지 않고, 필요하면 증거를 조작하거나 언론 플레이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검거율 1위’ 형사지만, 그 안엔 타협과 비리, 협박이 뒤섞여 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이 잡아야 할 진짜 범죄자들에겐 분노를 느끼고, 후배들에게 나름의 충고를 아끼지 않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스스로가 잘못된 방법을 쓰고 있음을 알면서도, 제도와 현실 속에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습니다. 최철기의 캐릭터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의’가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선과 악의 경계가 얼마나 얇은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세 인물들은 모두 우리가 쉽게 말하는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으로는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저마다의 선택과 감정, 상황 속에서 복잡하게 흔들립니다. <특종: 량첸살인기>의 허무혁은 진실보다 욕망을 택했고, <기생충>의 김기택은 차별에 무너진 가장이며, <부당거래>의 최철기는 현실과 타협한 법 집행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인물들을 보며 느끼는 건, ‘착하다’는 말에는 언제나 맥락이 따라붙는다는 점입니다. 누군가의 선의도 타인에겐 위선이 될 수 있고, 어떤 이의 악행도 그 배경을 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한국 영화는 이런 복잡한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며, 우리로 하여금 쉽게 판단하지 않게 만듭니다. 착한 사람은 정말 착한 걸까요? 아니면, 착해 보이길 바라는 우리 기대가 만든 허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