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보기 좋은 영화 시리즈 영화 베테랑 1, 2편 리뷰
사람이라면 누구나 겉과 속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울고 있는 사람이 있고, 친절한 말투와 미소 뒤에 어딘가 차가운 의도를 감추고 있는 사람도 있잖아요. 영화는 그런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정말 잘 보여주는 매체인 것 같아요. 특히 한국 영화 속에는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지닌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죠. 그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은 때로는 충격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묘하게 공감되기도 해서, 관객으로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게 꼭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 간극이 클수록 인물의 복잡한 내면이 더 뚜렷하게 드러나기 마련이죠. 오늘은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척하거나 착한 척을 하지만,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인물들, 혹은 그 이중적인 면을 의도적으로 이용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캐릭터들의 심리를 함께 들여다보려고 해요.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장경철은 겉보기엔 평범한 중년 남성입니다. 어딘가 으스스한 느낌은 있지만, 그가 상상 이상으로 잔혹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영화 초반까지만 해도 쉽게 드러나지 않죠. 그는 사람을 무참히 살해하면서도 일상적인 말투를 유지하고, 자기만의 규칙처럼 행동합니다. 장경철의 이중성은 단순히 악역이라는 범주를 넘어, 인간이 얼마나 무섭게 탈을 쓸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본성을 철저히 감춘 채, 사회 속을 유령처럼 떠돌며 범죄를 저지릅니다. 이중적인 정체성을 감추는 데 능숙하고, 그 안에서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더 섬뜩하죠. 그가 무너지는 장면에서도 우리는 뚜렷한 후회나 반성보다, 본능적인 자기방어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쉽게 쓰이지만, 영화 속 장경철은 그 이상입니다. 그는 겉과 속이 가장 철저히 분리된 인물로,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는 그 제목부터 이중성을 암시합니다. 전도연이 연기한 금자는 교도소에서는 누구보다 착하고 친절한 수감자로 통하지만, 실은 교도소를 나서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복수를 준비하죠. 그녀의 겉모습은 연약하고 상냥하며 때로는 천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엔 깊은 원한과 철저히 계산된 복수의 계획이 숨어 있습니다. 금자의 이중성은 단순한 복수극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강요한 ‘착한 여성’, ‘선한 피해자’의 모습에 맞추려는 억압에 대한 저항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오히려 이중적인 태도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며, 자기 삶을 다시 손에 쥐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복수를 집행하는 금자의 얼굴은 더 이상 친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표정하고, 단단하게 굳어 있습니다. 복수를 완성한 후 금자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조차, 우리는 그 이중성의 깊이를 실감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겉과 속이 다른 캐릭터가 얼마나 복잡하고 강렬할 수 있는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에서 김윤석이 연기한 김신부는 언뜻 보기엔 냉철하고 무뚝뚝한 성직자입니다. 그는 규율을 중시하며, 감정 표현에 인색하고, 후배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죠.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의 과거와 내면이 드러나며, 단순히 신앙심 깊은 신부가 아니라 깊은 죄책감과 분노를 안고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김신부의 이중성은 ‘믿음’이라는 직업적 이미지와, 인간으로서의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그는 신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상실과 죄책감을 겪었고, 악에 맞서는 일에 있어 때로는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냉정한 신부지만, 사실 그는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는 거죠. 이러한 이중성은 캐릭터에 깊이를 더할 뿐 아니라, 종교라는 상징과 인간성 사이에서 관객이 함께 고민하도록 만듭니다. 그는 이중생활을 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신념과 인간 사이의 경계’ 위에서 살아가는 복합적인 인물입니다.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 <검은 사제들>의 김신부. 이들은 모두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내면을 지닌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단지 연기를 잘한 캐릭터라서 기억에 남는 게 아닙니다. 이들이 가진 ‘이중성’은 우리 안에도 있는 감정들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겐 착한 사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차가운 사람일 수 있고, 때로는 웃으며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니까요.
개인적으로 이런 이중적인 캐릭터들을 볼 때마다,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얼굴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이 그 복잡한 얼굴을 대신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 두렵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받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중성은 위선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생존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