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다 괜히 마음이 촉촉해지는 순간이 있죠. 그럴 때
감정을 살짝 더 눌러주는 영화 한 편은 참 좋은 친구가 됩니다. 비 오는 날엔
이상하게도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곤 하죠. 평소엔 넘기던 장면에 괜히 울컥하거나,
조용한 음악에 잠시 멍해지는 순간들. 그런 날엔 바깥 풍경과 어울리는 감성 짙은
영화를 한 편 보면 훨씬 깊은 여운이 남아요.
오늘은 유난히 감성이 촉촉해지는 비 오는 날, 조용히 틀어두면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한국영화 다섯 편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이야기의 흐름도 빠르지 않고,
감정선도 섬세해서, 보는 내내 마음 깊은 곳을 천천히 건드리는 영화들이에요.
그냥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내 기분과 어딘가 닮아 있는 장면에
조용히 빠져들게 되는, 그런 영화들입니다. 빗소리와 함께 감정의 결을 따라가고
싶을 때, 이 영화들이 조용한 친구가 되어줄 거예요.
봄날은 간다 (2001)
감독: 허진호 / 주연: 유지태, 이영애
소리를 채집하는 라디오 PD 상우는 일상 속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섬세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기상캐스터 은수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죠. 하지만 모든 게 조심스럽고 깊었던 만큼, 그들의 관계는 계절처럼 조금씩 변해가고, 어느 순간 서로의 온도가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짧은 한마디는 그들의 감정을 함축한 명대사로 오랫동안 회자될 만큼 여운이 깊습니다. 사랑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로, 보고 나면 한동안 마음이 조용히 젖어드는 작품입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8)
감독: 이장훈 / 주연: 소지섭, 손예진
비 오는 날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아내. 그 약속은 그저 이별을 받아들이기 위한 위로 같았지만, 어느 날 그녀는 정말로 돌아옵니다. 기억을 잃은 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나타난 그녀와의 시간은 남편에게는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두 사람은 다시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서 말로 다 전하지 못했던 진심을 하나씩 꺼내놓고, 오래도록 간직해온 사랑을 다시 확인합니다. 현실과 환상이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이 이야기는, 보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아련하게 젖는 판타지 로맨스입니다.
유열의 음악앨범 (2019)
감독: 정지우 / 주연: 김고은, 정해인
1990년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열의 음악이 두 남녀를 처음 이어줍니다. 아주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그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엇갈리고,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은 늘 같은데, 상황과 시간은 늘 그 마음을 조금씩 밀어내죠. 영화 속엔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 감성을 고스란히 담은 OST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잊고 있던 감정들을 조용히 끌어올립니다. 특히 빗속에서 마주하는 장면들은 유난히 애틋하고 여운이 깊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젖어드는 기분이 듭니다.
그 해 여름 (2006)
감독: 조근식 / 주연: 이병헌, 수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첫사랑을 다시 마주한 남자가 과거의 여름을 회상하며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강렬했던 첫사랑의 기억과 그 안에 숨겨진 진심이 하나둘
밝혀지며, 감정을 꾹 눌러온 시간들이 터져 나옵니다. 조용하고 서정적인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감독: 허진호 / 주연: 한석규, 심은하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진관 주인 정원과, 그의 앞에 찾아온 발랄한 주차 단속요원 다림이 만들어가는 조용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끝을 예감해야 했던 남자의 담담한 감정과, 그를 바라보는 여성의 따뜻한 시선이 슬프고도 아름답게 담겨 있습니다. 비 오는 날, 유난히 고요한 감정이 보고 싶을 때 더 깊게 스며드는 영화입니다.
마무리
비 오는 날, 괜히 혼자 있고 싶고 또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날이 있죠. 그런 날엔
어쩌면 큰 위로나 해결책보다, 조용히 감정을 함께 걸어가주는 영화 한 편이 가장
좋은 친구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소개한 다섯 편의 한국 영화는 모두 빠르지 않지만
깊게 스며드는 이야기들입니다. 빗소리를 배경으로 마음속 무언가가 풀어지는 듯한
느낌을 전해줄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봄날은 간다>를 다시 볼 때마다 가슴이 조용히 저릿해집니다.
특별한 말 없이도 감정을 표현해내는 배우들의 눈빛과, 쓸쓸하게 흐르는 음악,
그리고 계절을 닮은 사랑의 모습까지. 비 오는 날, 이런 영화 한 편이 내 감정을
천천히 안아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템포 쉬어가고 싶을 때, 꼭 한 번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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