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보기 좋은 영화 시리즈 영화 베테랑 1, 2편 리뷰
이 글은 그런 질문에서 시작한다. 복수심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한 인물을 정의에서 멀어지게 하고, 결국엔 파국으로 몰고 가는지. 또한, 그 인물들이 왜 악당이면서도 동시에 안쓰럽고 복잡한 감정을 자아내는지, 한국영화 속 복수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그 딜레마의 구조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국영화에서 복수는 단순한 감정의 분출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깊고 오래된 상처에서 비롯되며,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짓밟힌 자가 마침내 감정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그 절박한 한순간의 발화다. 복수를 실행하는 인물은 종종 피해자이자 동시에 행위자가 되고, 우리는 그 양가적인 위치에 놓인 캐릭터들을 보며 쉽게 단죄하거나 응원할 수 없게 된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관객은 처음에는 피해자의 분노에 공감하고, 그의 행동을 정당하다고 느끼며 그 여정에 감정적으로 동참한다. 하지만 복수가 진행될수록, 그리고 그 방식이 점점 잔혹하거나 비틀린 방향으로 치달을수록, 우리는 복수하는 인물의 얼굴에서 처음의 고통이 아니라 전혀 다른 감정을 읽기 시작한다. 그 복수는 정말 그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를 대신해 분노하고, 세상을 향해 처절한 항의를 던지고 있는 것일까?
문제는 복수의 감정이 늘 옳은 결과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정의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정의로운 복수’라고 부르는 감정은, 그 이면에 또 다른 폭력을 품고 있으며, 한 사람의 해방은 다른 이의 파멸로 이어지기도 한다. 복수를 마친 인물들이 결코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응어리진 감정은 외부를 향해 터졌지만, 결국 남는 것은 내부의 허무와 고립이다.
결국 복수는 감정의 해소가 아니라, 또 하나의 질문을 만들어낸다. "정의란 무엇인가?" "복수를 실행하는 자는 언제 괴물이 되는가?" "그 행위는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런 물음은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히 사건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본성과 윤리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이끈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에서 수현은 약혼자를 잔인하게 살해한 살인마를 잡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된다. 그는 단순히 복수하지 않는다. 되갚고, 다시 놓아주고, 또 되갚는다. 고통을 길게, 천천히 돌려주기 위해서다. 관객은 처음엔 그의 고통에 공감하며 응원하지만, 그 복수의 방식이 점점 잔혹해질수록 수현의 얼굴은 살인자와 닮아간다. 결국 영화는 묻는다. "그래도 당신은 그를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올드보이>의 유지태 역시 마찬가지다. 오대수를 감금한 이유는 과거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였다. 말은 가볍게 뱉었지만, 그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졌다. 유지태는 철저하게 계획하고, 철저하게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복수한다. 그런데 그 고통은 단순히 육체적인 차원이 아니다. 사랑, 정체성, 인간관계를 무너뜨리는 복수다. 관객은 그런 복수의 치밀함에 소름을 느끼면서도, 그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에 대한 질문도 함께 안게 된다.
<친절한 금자씨>는 좀 더 복잡하다. 금자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그 시간 동안 복수를 준비한다. 그런데 그녀의 복수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자신처럼 상처받은 이들과 함께 계획하고, 실현하며, 그 안에서 복수의 정의가 공동체화된다. 관객은 그녀의 잔인한 복수를 바라보며 묘하게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동시에 그 복수가 누군가에게도 깊은 상처가 된다는 점 역시 외면할 수 없다.
이 외에도 <끝까지 간다>의 고건수, <곡성>의 종구, <부산행>의 용석 등, 상황은 다르지만 결국 복수를 통해 자신을 지키려는 캐릭터들이 한국영화 속엔 넘쳐난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이유로 움직이며, 그 감정이 너무도 이해되기 때문에 선악의 경계는 더욱 흐릿해진다.
복수는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인 감정 중 하나다. 그래서 영화에서 자주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최근 한국영화에서는 이 복수의 감정이 단순히 통쾌하거나 시원하게만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복수에 사로잡힌 인물들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통해, 그 감정의 위험성과 무게를 되짚는다.
관객은 복수하는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도, 그 복수가 지나치게 되면 멈춰야 하지 않나 하는 윤리적 고민을 하게 된다. 이 지점이 바로 딜레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복수가, 또 다른 악이 되는 순간.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복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정의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그렇기에 복수심에 사로잡힌 캐릭터는 종종 악당보다 더 무섭게 다가온다. 그들은 악을 처단하려다 스스로 악에 닿는다.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 감정이 어떻게 사람을 변하게 하는지를 깊이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나 자신을 가장 많이 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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